전화를 받는 손 모양으로 세대를 구별할 수 있다고 한다. 예를 들어 엄지와 새끼손가락을 펴고 나머지 손가락을 접은 상태로 귀에 대면 옛날 세대, 손가락을 쫙 펴서 손바닥을 귀 옆에 가져가면 요즘 세대라는 것이다. 가볍게 웃고 넘길 농담 같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의외로 기술 변화가 사회에 끼친 영향을 알 수 있다. 스마트폰을 보고 자란 세대, 그러니까 유선 전화기를 한 번도 보지 않고 자란 세대에게 전화는 곧 스마트폰이기 때문이다.
그만큼 스마트폰이 일상화됐다. 스마트폰 사용자 수는 해마다 증가해 2016년 86.5%였던 보유율이 3년 만에 92.2%로 늘어났다. 10대에 한정될 것 같던 스마트폰 의존도 역시 중장년층에서 증가하는 추세다. 10대의 의존도가 서서히 감소하고 있는 것과는 대비되는 현상이다. 그만큼 전 세대에 걸쳐 고르게 스마트폰 사용 비율이 늘어났다고 볼 수 있다.
사용 세대의 확장뿐 아니라 디지털 소외계층으로 분리됐던 사용자의 활용도 도드라진다. 2019년 기준으로 장애인의 4명 중 3명, 약 76.8%가 스마트폰을 사용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더불어 비장애인과 장애인의 사용성을 분리했던 배리어 프리(Barrier-free) 디자인보다 유니버설 디자인이 필요하다고 인식도 변화했다. 유니버설 디자인이란 성별, 연령, 국적, 문화적 배경, 장애 유무와 관계없이 누구나 손쉽게 쓸 수 있는 제품과 사용 환경의 설계를 말한다. 주로 건축, 도로, 생활제 설계에 적용되었지만 모바일 환경이 중요시되면서 유니버설 디자인은 이제 스마트폰에서도 빼놓을 수 없는 요소다.
누구에게나 ‘쓸모 있는’ 스마트폰을 위하여
보편적인 스마트폰을 위해 제조사도 기술 개발에 적극적이다. 대표적인 스마트폰 제조사인 삼성전자와 애플의 사례를 통해 유니버설 디자인이 모바일에서 어떤 식으로 적용되고 있는지 살펴볼 수 있다.
삼성전자의 대표적인 모바일 유니버설 디자인에는 개발자 콘퍼런스 2018에서 공개된 차세대 UX ‘원(ONE) UI’가 있다. 화면 몰입 방해 요소를 최소화하고, 한 손 조작이 가능하게 하는 등 편의성을 높인 기능으로, 현재 3.1 버전 업데이트를 마쳤다. 일반 사용자를 위한 새로운 기술 같지만 원 UI는 일종의 유니버설 디자인이다. 한 손 조작이 가능하고, 기기 외부에서 AI 빅스비를 호출하는 버튼 등은 시각 장애인의 편의성을 높이기 위한 기능에서 출발했다.
이외에도 시각과 청각 보조, 동작 보조, 접근성 향상 등에 초점을 맞춰 기기의 쓸모를 강화하고 있다. 몇 가지 서비스를 살펴보면, 시청각 보조를 위해 개발된 ‘스크린 리더’는 저시력 사용자를 위해 음성 피드백을 제공한다. 아기 울음이나 초인종 소리를 감지해 시각적 피드백과 진동으로 알림을 주거나 70개 이상의 언어를 감지해 자막으로 보여주는 기능도 있다. 동작을 보조하기 위해 스위치 제어나 입력 제어 등의 서비스도 있다.
‘접근성이 곧 인권’이라는 기업 가치를 가진 애플은 모바일 유니버설 디자인을 위한 소프트웨어 설루션 개발에 오랫동안 투자해왔다.
애플이 2014년 특허 출원한 ‘한 손 모드’는 스마트폰 측면 터치 센서가 스마트폰을 쥐는 손가락 위치를 감지해 주로 어떤 손을 사용하는지를 식별한다. 모션 센서를 활용한 기술도 있어 사용자가 스마트폰을 귓가에 가져가는 동작을 감지해 주로 사용하는 손이 어느 쪽인지를 판단한다. 손 식별을 토대로 엄지손가락이 닿기 쉬운 위치에 아이콘이 모여 손쉬운 사용이 가능하다.
시각, 청각, 운동능력, 인지능력 보조를 위한 기능도 다양하다. 예를 들어 VoiceOver는 화면을 읽어주고 필요한 경우 점자로 설명해 준다. 30개 이상의 언어로 음성을 받아쓰기도 하다. AssistiveTouch는 신체 조건에 맞게 터치스크린을 조정할 수 있고 화면을 탭 하는 것으로 터치를 대체한다. 기기 후면을 탭 하면 자동으로 사용자가 설정한 작업을 수행하도록 기기 접근성을 강화시켰다.
지난 5월에 미국, 영국, 프랑스에서 도입된 SignTime은 각 나라에 맞는 수어로 애플 고객지원 부서와 상담할 수 있는 서비스다. 2021년 연내 상용화를 목표로 하는 ‘안구 추적’은 눈동자 움직임으로 아이패드를 제어할 수 있는 기능이다.
‘모두를 위한 쓸모’를 찾아가기 위한 시도
유니버설 디자인이 스마트폰에 적용되기 이전에도 디지털 격차를 좁히기 위한 움직임이 있었다.
LG전자는 2006년 국내 최초로 시각장애인용 휴대폰인 ‘책 읽어주는 휴대폰'을 개발했다. LG상남도서관 개관 10주년을 기념하기 위해 개발된 이후 1년 간격으로 업데이트를 계속했다. 2015년까지 고도화됐지만 비장애인과의 디지털 격차를 본질적으로 좁히기는 어려웠다.
배리어 프리 디자인이 상용화된 경우도 있다. 삼성전자는 2006년 최신 휴대폰을 다루기 어려워하는 노년층을 타깃으로, 전화 수신 및 문자 음성 안내 등 필수 기능만 담은 지터벅 휴대폰을 북미 한정으로 출시했다. 국내에서는 LG전자가 2007년 와인폰을 출시했다. 와인폰은 스마트폰에 적응하지 못하는 사용자를 타깃으로 쓰기, 읽기, 듣기 기능만을 강화한 휴대폰이다. 사용성을 높이기 위한 휴대폰이지만, 사회적 약자를 특별한 존재로 부각시켜 오히려 사회적 소외를 낳는다는 한계가 있었다.
배려보다는 ‘모두를 위한 쓸모’가 필요하다는 인식은 자연스럽게 모바일 유니버설 디자인으로 이어졌다.
국내에서는 2013년 과도기적 모바일 UI가 등장했다. SKT는 ‘T간편모드’는 스마트폰의 구성을 일반 피처폰 모드로 보여주는 새로운 기기에 쉽게 적응할 수 있도록 도왔다.
같은 해 노년층을 위해 미래창조과학부-보건복지부-SKT가 함께 개발한 ‘T실버’ 서비스도 있다. 두 서비스 모두 디지털 격차를 좁히는 UI는 아니었지만, 국내에서도 제한 없는 모바일 사용이 필요하다는 인식 변화를 알 수 있는 사례다.
‘새로운 쓸모’를 발견하는 MZ세대
기술 과도기를 거쳐 유니버설 디자인이 정착되고 있는 현시점에서 MZ세대는 유니버설 디자인의 새로운 쓸모를 발견하고 있다.
예를 들어 시각 장애인을 위한 ‘스크린 리더기'는 외국어 발음 교정용으로, 디지털 돋보기를 위한 ‘확대기'는 좋아하는 연예인의 영상이나 사진을 크게 보는 용도로 쓴다. 청각 장애인을 위해 개발된 ‘소리 인식’은 이어폰 사용으로 주변음을 잘 듣지 못할 때 알람으로 상황을 전달받는다. 텍스트를 쉽게 읽을 수 있게 화면 속 요소를 어두운 계열로 보여주는 ‘다크 모드'는 개성을 표현하는 디자인 테마가 됐다. MZ 세대는 부족한 신체 능력을 보완하는 게 아니라 취미와 자기계발이라는 전혀 상상 못한 영역에서 쓸모를 찾아내는 중이다.
모바일 유니버설 디자인에는 시대가 지향하는 쓸모가 담겨 있다. 모바일이라는 작지만 큰 환경에서부터 시작되는 쓸모 있는 시도가 차곡차곡 쌓여 사회를 보다 쓸모 있게 변화시키기를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