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써진 글’만큼 주관적인 것도 없다. 무엇이 잘 써진 글인지를 판단하기 위해서는 명료한 기준이 필요한데, 문제는 그 기준부터 모호하다는 데 있다. 누군가는 문학 작품처럼 여운을 주는 글을 잘 썼다고 할 수 있고, 누군가는 맞춤법과 띄어쓰기가 완벽한 글을 두고 잘 썼다고 할 수 있다. 어쩌면 쉽게 요지가 이해되는 글을 잘 썼다고 말할지 모른다. 이렇게 모호한 글쓰기, 그러니까 텍스트가 삶에 쓸모 있는 영향을 줄 수 있을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그렇다!
텍스트의 범위를 모바일 서비스로 좁힌다면 잘 써진 텍스트는 무엇보다 쓸모 있다. 디지털 디바이스의 발달과 온라인 서비스가 늘어난 배경에서 사용자 행동 변화를 본다면 쉽게 답을 찾을 수 있다.
디지털 시대, 사용자가 달라졌다
디지털 시대라고 불리는 오늘날의 사용자는 읽는 방식(Reading)이 아니라 훑는 방식(Scanning)으로 디지털 텍스트를 소비한다. 혹자는 아무리 해상도가 높은 스크린이라고 해도 인쇄된 텍스트와 비교하면 인지 속도가 25% 정도 느린 점을 변화의 이유로 설명한다. 문제는 빠르게 텍스트를 훑는 만큼 오독이 많아졌다는 점이다.
그래서인지 10대와 20대를 중심으로 텍스트보다 영상을 선호하는 경향을 보인다. 일부 세대의 영상 선호 현상은 팬데믹을 기점으로 크게 달라졌다. 대표적인 영상 서비스 채널인 유튜브는 팬데믹 이후 폭발적으로 점유율이 증가했다. 유튜브 내 개인 채널 수만 2,430만 개이며, 1인당 월평균 시청 시간이 16시간으로 조사됐다. 수치로 보면 국내 전체 인구의 약 83%, 4000만여 명이 유튜브를 사용한다. 엔터테인먼트 툴을 넘어 영상은 검색 수단으로도 활용하고 있다. 유튜브에서 ‘How to~(어떻게 할까)’를 검색하면 포털 사이트보다 많은 자료가 검색된다. 이미 몇 년 전부터 국내 포털 업계는 유튜브의 성장에 위기감을 표현하기도 했다.
텍스트보다 영상을 우선하는 사람들이 늘고, 일부 MZ 세대의 문해력 저하 문제가 맞물리면서, 아이러니하게도 기업은 텍스트의 중요성을 인지하기 시작했다. 모바일 문법에 맞춰 잘 써진 텍스트야말로 자사 서비스를 보다 쓸모 있게 만드는 요소로 본 것이다.
쓸모를 더 쓸모 있게 만드는 UX Writing
서비스의 쓸모 강화라는 배경에서 등장한 UX Writing은 사용자의 경험을 위한 텍스트라고 할 수 있다. 사람들이 서비스를 이용할 때 보고 듣는 단어, 문장 등을 디자인해 서비스 경험 향상을 목적으로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공급자의 입장에서 만들어진 전문 용어가 아닌, 사용자에게 익숙한 텍스트로 커뮤니케이션을 진행한다. Dropbox, Facebook, Airbnb, Pinterest, Google, Spotify 등 글로벌 기업들은 일찌감치 그 중요성을 인지하고 자사 서비스에 UX Writing을 적용하고 있다.
UX Writing의 효과는 긍정적이다. 사용자가 콘텐츠를 정확하게 이해할수록 서비스를 사용하는 시간이 길어지고, 이것이 매출 증대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특히 모바일을 통한 커머스와 금융 서비스 이용이 증가하면서, 애플리케이션 내의 CTA(행동 유도) 텍스트가 어떻게 쓰여 있는지에 따라 전환율에 미치는 변화가 크다. 고객 스스로 서비스를 직관적으로 이해가 가능해 고객 만족도가 높아지고, 고객 센터 투자 비용을 최소화하는 등의 효과도 있다.
국내 UX Writing의 역사는 미국, 유럽에 비하면 짧다. 하지만 모바일 서비스가 확대되면서 원활한 디지털 커뮤니케이션을 위한 쓸모 있는 텍스트의 역할이 커지고 있다.
현재 이 같은 흐름에 가장 적극적인 것은 금융권이다. 핀테크 기업인 토스는 적극적으로 UX Writing을 서비스에 적용하고 있다. 금융은 어렵다는 인식에 변화를 주기 위한 일관된 라이팅 원칙하에 40여 개의 토스 서비스가 동일한 톤 앤 매너를 지향한다.
기존 금융권에서도 사용자에 맞춘 쉬운 언어를 위한 움직임이 있다. 신한카드는 지난해 UX Writing 가이드를 통해 자사 서비스의 편의성을 높였고, KB국민은행은 2019년 사용자 관점의 글쓰기 원칙을 담은 KB고객언어가이드를 발간했다. KB국민은행이 가이드 발간 이후 모바일뱅킹 사용자 400명을 대상으로 한 만족도 조사를 진행한 결과 사용 이해도에서 이전보다 2배 이상 만족도가 높아진 것으로 알려졌다.
금융권 외에도 네이버, 카카오, SK텔레콤, LG유플러스 등 ICT 기업이 UX Writing을 서비스에 반영하고 있다.
UX Writing, 쓸모 있는 원칙
사용자의 쓸모 있는 경험을 목적으로 하는 만큼, UX Writing은 사용자에게 초점을 맞춘다. 사용자가 쉽게, 필요한 정보를 이해해야 다음 행동으로 이어질 수 있다. 긍정적으로 쌓인 사용자 경험은 서비스의 충성도와 신뢰로 연결되기 때문이다. 구글은 Google I/O 2017에서 ‘How Words Can Make Your Product Stand Out’이라는 주제로 자사의 UX Writing의 원칙을 소개했다.
1. 명확하게 (Clear)
2. 간결하게 (Concise)
3. 유용하게 (Useful)
가장 먼저 의미가 압축된 단어나 전문용어는 뜻을 풀어쓴 명확한 표현으로 사용자의 이해를 높인다. 구구절절한 설명 대신 간결하게 텍스트를 쓰고, 폰트 크기와 스타일을 디자인해 중요 정보가 먼저 인지할 수 있게 한다. 최근에는 적당한 위트와 유머를 더해 사용자가 공감할 수 있는 방식으로 긍정적인 쓸모를 만들어내고 있다. UX Writing은 모바일로 서비스를 이용하고, 훑는 방식과 영상을 선호하는 사용자의 특징에 맞춘 새로운 문법인 셈이다. 구글뿐 아니라 대다수의 기업이 동일한 방식으로 자사 서비스의 텍스트를 정리하고 있다.
UX Writing은 서비스와 사용자 사이를 보다 쓸모 있게 연결한다.
달라진 사용자 경험을 읽고 새롭게 발견한 텍스트의 쓸모가 사용자 경험을 어떻게 변화시킬지 귀추가 주목된다.